
칩 히스와 댄 히스 형제의 방향성은 늘 애매모호한 일상의 고민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이번에 접한 그들의 메시지는 '후회'라는 감정을 단순한 후회가 아닌, 삶을 정비하는 지표로 바꾸어 놓는 강력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늘 지나간 선택을 아쉬워하며 주저하던 조급한 마음을 이 책은 저에게 이정표로 알려주었고, 저는 이를 바탕으로 일터와 가정에서의 선택 기준을 새롭게 정리해 보려 합니다.
단기적 후회와 장기적 미련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고, 그 결과에 대해 크고 작은 후회를 남기곤 합니다. 마흔 줄에 접어든 대한민국 직장인으로서 제 삶을 돌이켜보면, 매일의 일상은 후회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장 어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위에서 내려온 갑작스러운 업무 지시와 아래 직원들의 불만 섞인 눈초리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부하 직원에게 다소 날카로운 어조로 지시를 내렸습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왜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와 밤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칩 히스와 댄 히스가 말하듯, 이러한 감정적인 실수나 순간의 잘못된 대처는 당장 눈앞에서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단기적 후회'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후회는 시간이 지나면 가볍게 잊혀지거나,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비교적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성격의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장기적 후회', 즉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입니다. 십수 년간 앞만 보고 달리며 회사에서 자리를 잡는 동안, 정작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두 딸아이가 아빠를 찾으며 안겨 오던 시절, 저는 늘 피곤하다는 핑계로 주말마다 침대에 누워 쉬려고만 했었습니다. 그때 조금 더 몸을 움직여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놀아주지 못했던 기억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아이들은 금세 자라 이제는 자기들만의 생활을 구축해가고 있고, 아빠와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회사에서의 말실수는 다음 날 수습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하지 못한 장기적 미련은 어떤 기술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습니다.
이러한 히스 형제의 분석은 매우 명쾌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저의 입장에서는 다소 이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마치 단기적 후회를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장기적 관점에만 집중하면 될 것처럼 말하지만, 매일 성과를 내야 하고 평판을 관리해야 하는 조직 생활에서 당장의 말실수나 단기적 판단 착오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당장의 단기적 후회들이 쌓여 인사고과가 망가지면, 미래를 도모할 경제적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기적 후회를 무조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자잘한 스트레스에 묻혀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장기적인 가치, 즉 가족과의 시간이나 인생의 큰 도전들을 뒤로 미루는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삶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비된 결정과 기준의 부재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이 뜨끔했던 부분 중 하나는, 선택지가 너무 많을 때 인간은 오히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결정 마비' 상태에 빠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현상은 대기업의 복잡한 조직 체계 속에서 일하는 제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습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마다 위선에서는 늘 '혁신'을 외치지만, 막상 기획서를 올리면 수많은 리스크를 지적하며 보완을 요구합니다. 실패했을 때 책임지기 싫은 마음과 완벽한 정답만을 찾으려는 강박이 겹치면서, 결국 저는 수십 가지 대안을 고민만 할 뿐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마비 상태에 빠지곤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흘러가고, 시장의 타이밍은 놓치며,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발생하는 후회'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 장애는 집에서도 고스란히 발생합니다. 아내와 함께 두 딸아이의 학원 문제나 진학 방향을 고민할 때였습니다. 주변 학부모들의 이야기, 인터넷 커뮤니티의 수많은 정보, 대치동의 트렌드까지 수많은 선택지가 쏟아지면 저와 아내는 이내 지쳐버립니다.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해서 아이의 미래를 망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이 학원 저 학원 레벨 테스트만 전전하며 정작 중요한 결정은 뒤로 미루기 일쑤입니다.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아무런 선택도 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사이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책에서 지적한 대로 대안이 많아질수록 인간은 후회를 덜 하기 위한 방어 기제로 '결정 유예'를 선택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장 큰 후회를 낳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일상에서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히스 형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대안을 정해야 한다고 조언하지만, 변화무쌍한 한국의 교육 현실과 기업 문화 속에서 고정된 기준을 고수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책의 조언은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통제 가능한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장 내년 입시 제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회사의 사업 방향이 분기마다 뒤바뀌는 상황에서 정해진 기준만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무모한 도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책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면, 완벽한 기준을 찾으려는 집착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지금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린 뒤,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유연하게 수정 보완해 나가는 '실천적 담대함'이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더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후회의 직시와 성장의 동력
히스 형제는 후회라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생겨난다고 강조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저는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제 안의 열등감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동기들 중 가장 먼저 팀장 승진 코스에 올랐던 친한 동료가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겉으로는 축하해 주었지만, 속으로는 심한 질투와 함께 '내가 저 친구보다 못한 게 무엇인가' 하는 깊은 후회와 자괴감에 꽤나 시달렸습니다. 그 감정이 너무 괴로워 한동안 그 동료를 멀리했고, 제 부족함을 대면하기보다는 회사 시스템의 불공정함을 탓하며 현실을 도피했습니다.
하지만 책의 권고대로 그 후회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직시해 보기로 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승진한 동료는 제가 귀찮아하던 타 부서와의 조율 작업을 밤을 새워가며 완수했고,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으며 꾸준히 자신을 갈고닦았던 반면, 저는 주어진 루틴 한 업무만 처리하며 현실에 안주해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제 후회의 본질은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스스로의 나태함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이를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저는 매니지먼트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팀원들의 고충을 먼저 듣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후회라는 아픈 감정을 성장의 연료로 삼아 제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만, 히스 형제가 말하는 '후회의 긍정적 전환'은 말처럼 그리 대단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지난한 과정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책에서는 후회를 직시하면 마치 대단한 깨달음이 오고 인생이 단숨에 바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 자신의 못나고 실패한 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는 것은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반성과 성장이 아니라, 깊은 자기혐오나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그렇기에 후회를 동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나친 자기비판을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과거의 나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선행될 때, 비로소 후회는 우리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아닌,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내는 단단한 거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