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더는 이야기를 안 하더라고... 그럴 줄 알았다는 체념의 표정이었다고나 할까 싶네."
오랜만에 이번 주말에 애들하고 한번 놀러 가지 않겠냐는 아내의 이야기에 제 몸 피곤함과 귀찮음에 선뜻 가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고, 그냥 좀 쉬면 안 돼? 나 매일 야근하느라 피곤하단 말이야..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아내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쇼펜하우어 삶의 지혜, 진급보다 중요한 걸 놓쳤다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지위나 지금보다 더 큰 아파트 평수로 이사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이런 눈에 보이는 외적인 조건들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내 마음의 건강이나 새로운 지식에 대한 갈망이라는 내적 자산에 소홀히 하게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적인 것에 신경 쓰고 매달렸을 때에는 실적이 되는 업무는 어떻게든 맡아서 하려고 했고, 평일 야근과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고 정말 열심히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데 일 때문에 가족과의 시간을 잊고 살아가게 되었던 거 같았습니다. 바쁠 때에는 일주일에 3~4번도 야근을 했었고 주말에는 피곤함에 늦잠을 자거나 일어나더라도 소파에 몸을 맡기고 허송세월을 보낼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문뜩 생각나는 저의 부끄러운 행동은 큰아이, 작은아이 둘이 함께 누워있는 저에게 다가와서 같이 놀자고 졸랐는데 피곤한 나머지 아이들보다 저의 입장을 더 생각했고, 그냥 쉬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 이야기를 못 들은 척, 모르는 척한 적도 솔직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내가 저를 부르면서 이번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어디 놀러 가지 않을래?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날 역시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서 눈만 감으면 바로 잘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날이었는데 주말이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에 "나 요즘 바쁜 거 잘 알잖아. 주말이라도 좀 숴야할 거 같아.."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아내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래.. 알았어..라는 말과 함께 체념한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연찮게 서점에서 보게 된 "쇼펜하우어의 삶의 지혜"는 제목부터가 저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상시 쇼펜하우어의 책을 종종 봤었고, 볼 때마다 감명 깊게 봤었던 터라 기대하며 보게 되었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던 저의 잘못된 모습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쇼펜하우어 책이 건드린 문장, 감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
쇼펜하우어의 삶의 지혜를 읽으면서 많이 느낀 것은 외적인 재물이나 명예는 언제나 없어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개인의 인격과 지성은 어떤 상황에서도 빼앗기지 않는 온전한 내 것이라는 말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언제나 잃을 수 있는 것에 매달렸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외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조금은 내려놓고 내적인 지식이나 건강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들에게 번듯한 직장인으로 보이기 위해서라든가 자녀를 남부럽지 않게 교육도 시키고 키운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정작 나 자신과 가족의 행복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아이들 성적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더 신경 쓰이고 우리 가족의 소박한 일상이 다른 가족들과 비교됐을 때 좀 초라하게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아이가 어느 날 같은 반 친구는 지난 주말에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비즈니스를 타고 갔었는데 엄청 편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뒤숭숭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남들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가족만의 소박하고 따뜻한 일상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의 내용 중 많이 공감했던 부분은 타인의 평가라는 건 지극히 변덕스럽고, 얕은 것이어서 거기에 내 행복의 기준을 맡기는 것은 감옥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을 때 내 삶의 진정한 우선순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 역시 가족의 소중함을 많이 되돌아보게 해 준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이 저에게 너무 소중한 일상을 선물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책 읽고 주말이 바뀌었다. 캠핑, 연날리기, 자전거 타기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서둘러 퇴근하고 가족들 다 함께 저녁을 먹는다든가, 캠핑을 가서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주말에 자전거를 타며 논다든가, 공원에 가서 연도 날리고 비눗방울 놀이도 하며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생각나는 것은 아이들 표정이 정말 아무 그늘 없이 환한 미소밖에 보이질 않았고,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가족을 챙기지 못한 후회가 많이 들었고, 이제라도 깨닫게 돼서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조언을 100%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도 하기는 합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고독의 가치와 내 삶의 우선순위를 정확히 정하고 집중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너무 도움이 되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고통의 근원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직사회는 경쟁과 노동의 고통이 일상화가 되어있는데 무조건 타인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가라는 요구는 공동체적 연대를 너무 등한시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결국 혼자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내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중심을 잡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버텨내는 연대와 협력의 가치 역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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