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 쓰기』는 화려한 수식어로 가득 찬 글이 아닌, 알맹이만 남긴 단단한 글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매일 쏟아지는 업무 이메일과 기안서에 어려운 전문용어 같은 것이 더 있어 보이는 거 같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 책은 넘치는 생각과 삶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책입니다. 앞으로 회사에서의 소통, 가족과의 대화, 그리고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이 책의 핵심인 ‘단단한 덜어내기’를 적용하여 말과 글의 본질을 회복하려고 합니다.
덜어내기: 장황한 보고서와 직장인의 말 더듬
윌리엄 진서는 글쓰기의 가장 큰 적이 군더더기(clutter)라고 말합니다. 쓸데없는 부사와 형용사, 거창하지만 알맹이 없는 전문용어를 걷어내는 것이 명확한 생각의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며 지난주 본부장님께 올렸던 하반기 인력 충원 기안서가 떠올라 좀 부끄러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부서 간 유기적인 시너지 창출과 미래 지향적 가치 제고를 위하여 본 인원 충원이 시급히 요구되는 바…"라는 문장이 제 기안서의 첫 줄이었습니다. 있어 보이려고 잔뜩 힘을 준 문장이었지만, 결국 "사람이 부족하니 한 명 더 뽑아달라"는 말을 복잡하게 꼬아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왜 우리는 직장에서 자꾸 이런 어려운 단어를 쓰려고 고민할까 생각해 보면, 아마도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논리가 빈약하거나 스스로 책임지기 두려울 때, 우리는 단어를 길게 늘이고 모호한 언어 뒤로 숨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40대 중간관리자가 되면서 책임질 일은 늘어났고, 그 두려움만큼 제 보고서와 이메일은 점점 더 장황해졌던 것입니다. 진서의 지적대로라면 이는 상사에 대한 배려가 없는 무례한 글이었습니다. 직장에서의 소통은 화려함이 아니라 명확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는 이메일 한 장을 쓰더라도 '여기서 뺄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인가'를 먼저 고민하고자 합니다. 생각을 먼저 해보고, 핵심만 남겨두는 글쓰기야말로 직장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실력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단순함: 초등학생 딸과의 대화와 아빠의 훈계
단순함(simplicity)은 단순히 글자 수를 줄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서 직관적으로 만드는 작업을 이야기합니다. 이 원칙은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제 가정생활, 특히 초등학교에 다녀온 두 딸아이와 대화할 때 많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 큰아이가 숙제를 미루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아내에게 혼이 나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일이 있었습니다. 거실로 나온 아이를 앉혀두고 아빠로서 한마디 거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네가 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어. 시간 관리라는 건 말이지…"로 시작된 제 훈계는 10분이 넘게 이어졌습니다. 아이는 눈을 멍하게 뜬 채 고개만 끄덕였고, 결국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조금 생각해 보니 제 훈계는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서가 말한 '나쁜 글의 전형'처럼, 듣는 사람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고 내 지식을 과시하며 정말 하고 싶었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숙제 먼저 끝내놓고 마음 편하게 놀면 더 재미있단다"라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40대 아빠들은 종종 집에서 '가장'이자 '어른'이라는 무게감 때문에 아이들에게 훈계를 할 때도 온갖 어려운 단어와 도덕적 관념을 마구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인생철학이 아니라, 당장 공감할 수 있는 단순하고 투명한 언어입니다. 아내와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이 섞여 복잡해진 부부 싸움의 순간일수록, 장황한 변명 대신 단순하게 "내가 미안해, 힘들었지"라는 한마디가 관계의 얽힌 매듭을 푸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진정성: 진짜 내 목소리를 찾는 나이의 글쓰기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강조합니다. 남의 말투를 흉내 내지 말고,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꺼내놓으라는 조언입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깊은 회의감에 빠졌습니다. 대한민국에서 40대 직장인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나만의 목소리를 철저하게 지워나가는 과정과 같기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조직의 논리에 맞춘 표준화된 문장만 써야 하고, 집에서는 남편과 아빠라는 역할에 걸맞은 정해진 말만 골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문득 '진짜 내 생각은 어디로 갔나' 하는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서점가에 넘쳐나는 자기 계발서나 재테크 책들을 읽을 때도, 저는 그 저자들의 화려한 성공 방정식과 문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그것이 제 정답인 양 믿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야 성공한다", "40대에는 이만큼 벌어야 한다"는 타인의 목소리에 제 삶을 짜 맞추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진서의 책을 읽으며, 이제는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나의 언어'를 회복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고, 조금 투박해도 좋습니다. 매일 단 세 줄이라도 내 감정과 일상을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세상이 원하는 그럴듯한 이치나 멋진 문장이 아니라, 40대를 지나며 느끼는 삶의 무게와 소소한 기쁨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글쓰기야말로 제 삶을 진정으로 단단하게 지탱해 줄 버팀목이 될 것이라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