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에서 보고서 하나 때문에 밤을 새운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제출한 보고서에서 정작 팀장이 지적한 건 오타가 아니라 보고서의 방향성이었습니다. 애덤 그랜트의 '히든 포텐셜'을 읽으면서 그 밤이 떠올랐고, 제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완벽주의가 성장을 막는 이유
일반적으로 완벽주의자는 더 뛰어난 성과를 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맞는 부분도 있지만, 아닌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시험처럼 범위가 정해진 환경에서는 완벽주의가 통합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고, 반복해서 연습하면 100점에 가까운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은 다릅니다. 시험 범위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고, 심지어 시험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토마스 커런의 연구에 따르면, 완벽주의는 불안과 우울, 그리고 번아웃(burnout)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예측 변수라고 합니다.(출처: 영국 배스대학교 토마스 커런 연구팀).
제가 주변에서 보는 40대 부장, 팀장들 중에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보고서 오타 하나도 못 넘기고 새벽까지 혼자 붙잡고 있는 스타일인데, 솔직히 그분들을 탓할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는 성과로 압박하고, 아래에서는 MZ세대 팀원들이 효율성을 따지니 본인이 완벽하게 챙기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걸 100점으로 만들려다 결국 건강이나 가정 중 하나가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완벽주의의 진짜 문제는 실수를 배움의 기회로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을 추구하다 98점을 받으면 잘했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2점을 잃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 감각이 쌓이면 결국 처음부터 성공이 보장된 일만 하려 하고, 창의적인 시도는 점점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잘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새로운 시도를 피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을 더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현실적인 반박도 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기준을 누가 정하느냐는 문제입니다. 제 아무리 전략적 불완전함(strategic imperfection)을 받아들이기로 해도, 인사고과를 결정하는 임원이 "이게 최선이야?"라고 한마디 하면 그날로 이 전략은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태도 변화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피드백을 구하는 기술과 그 현실적 한계
40대가 되면 주변에서 진실을 말해주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듭니다. 다들 눈치를 보거나 뒤에서 수군대지, 정면으로 "부장님, 그 방식은 다시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책에서는 이른바 정보의 고립(information isolation)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부하 직원들이 불편한 사실을 걸러서 보고하게 되어 리더가 왜곡된 현실 인식을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가 "딱 한 가지만 개선점을 알려줄 수 있어?"라고 묻는 것은 이론상 아주 세련된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만들어주는 행동이기도 하는데, 처벌받을 두려움 없이 발언하고 실수를 인정할 수 있다는 팀 내 온전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조직에서 이 심리적 안전감이 높을 때 팀 성과와 혁신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에이미 에드먼슨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그런데 한국의 수직적 조직 문화에서 이게 실제로 가능하느냐라는 질문에는 솔직히 고민이 되기는 합니다. "한 가지만 말해봐"라고 했을 때 열에 아홉은 "아니요, 너무 잘하고 계신데요"라고 대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나름 고민해서 조언을 했다가 나중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몸을 사리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조언을 구하는 기술보다 더 중요한 건, 평소에 어떤 말을 들어도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수용한다는 신뢰를 쌓아두는 일입니다. 이 과정을 책에서는 조금 쉽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포괄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질문이 막연한 칭찬 요청보다 훨씬 솔직한 답변을 유도한다는 점은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그 피드백을 받았을 때 얼굴이 굳어지거나,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한 번의 반응이 이후 수십 번의 피드백 문화를 만들기도 하고 망치기도 합니다.
아이의 잠재력, 성적보다 먼저 봐야 할 것
아빠로서 솔직히 고백하면, 답답한 마음에 아이에게 수학 문제 하나 더 풀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방문을 닫으며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으면서도, 당장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이 그 자괴감보다 더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에서는 인지적 능력보다 끈기나 자제력 같은 비인지적 역량(non-cognitive competency)이 장기적 성취를 더 잘 예측한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창의력을 키워주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게끔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하는 부모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부부 역시도 지금 당장 공부를 더 잘하는 것보다 아이가 커서 본인이 판단하는 나이가 됐을 때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고 싶은 마음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품성이 아무리 훌륭해도 성적이 뚝 떨어지면 진학이 막히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럴 때 "너는 끈기가 있으니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회복탄력성도 어느 정도 성취가 뒷받침되어야 동기부여가 유지된다는 점에서, 책에서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너무 개인의 태도 변화로만 풀려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책의 내용과 현실을 나름 접목해서 실제로 사용해 봤던 방법으로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는 방식입니다. 수학 점수가 올랐을 때보다, 어려운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을 때 더 크게 반응해 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벽하게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이가 틀렸을 때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묻는 횟수가 조금씩 늘었습니다. 작은 변화지만, 그게 장기적으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지는 지금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히든 포텐셜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 옳습니다. 완벽주의를 내려놓고, 불편한 피드백을 먼저 구하고, 아이의 성향을 성적보다 먼저 보는 것. 다만 이 모든 게 개인의 결심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합니다. 제도와 문화가 받쳐주지 않으면 개인의 용기는 쉽게 꺾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것보다 주변 한 명과 나누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혼자 시작하지만, 지속되려면 함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