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꽤 오랫동안 열심히 앉아 있는 게 곧 일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송길영의 "그냥 하지 말라"를 읽으면서 그 믿음이 얼마나 낡은 것이었는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성실함, 개인 브랜드, 자녀 교육 세 가지 주제로 이 책이 던지는 화두를 저의 경험과 함께 풀어봤습니다.
성실함보다 영리함이 먼저인 시대
예전 직장에서 저는 상사보다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는 게 최고의 미덕이라 생각했었고, 밤새워 기획안 쓰고 소주 한 잔 하며 으쌰으쌰 하는 게 열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회사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게 전부 '비효율적인 결과'로 남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지금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업무의 전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숙련도와 해박함 없이는 자기 직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한 분야를 깊이 잘 아는 것을 넘어,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데이터로 쌓이면서 시장에서 나와 비슷한 결과물끼리 비교 평가받는 구조로 바뀌었기에 이제는 일도 성실하게, 열심히만 하는 것이 아닌 영리하게 함으로써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나에게 더 나은 이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견이 갈린다고 생각은 합니다. 성과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게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데이터로 수치화되지 않는 조직의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눈치와 태도가 여전히 중요한 한국 조직 문화에서 영리함만 따지다 보면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입니다.
그래도 저는 요즘 엑셀과 협업 툴을 새로 배우면서 제 업무를 어떻게든 시각화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서투르긴 해도 이렇게 하다 보니, 회사 밖을 나갔을 때 이게 다 자산이 되겠다 싶어 의욕이 생깁니다. 성실함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제는 성실함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가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함 빼면 남는 게 없다면: 개인 브랜드
회사 명함 파워가 제 실력인 줄 착각하며 살았던 세월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전직 무슨 회사 부장' 말고 진짜 나를 설명할 키워드가 있느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선뜻 답을 못 하는 제 모습이 꽤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책에서는 개인 브랜드 구축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개인 브랜드란 퍼스널 브랜딩(Personal Branding)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온라인상에 남기는 글, 사진, 의견이 누적되어 나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대변하는 무형의 자산을 의미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이 훨씬 길어진 지금, 이 이야기는 결코 남 얘기가 아닙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2.7세이며, 정년퇴직 이후에도 평균 20년 이상의 경제활동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통계청). 회사라는 울타리가 사라진 뒤 20년을 버텨야 하는데, 지금 쌓아두는 나만의 스토리가 없다면 그건 진짜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모두에게 달콤하게 들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매달 학원비에 대출 이자 갚느라 허덕이는 40대 가장에게 개인 브랜드 관리까지 하라는 건, 솔직히 성공한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때도 있습니다. 사실 번아웃 직전인데 뭘 더 배우고 기록하고 알리라는 건지 모르기도 하고, 평범하게 자기 직무에 충실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삶의 가치를 '서사가 없다'는 식으로 낮게 보는 뉘앙스가 있다면, 그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지금 업무를 할 때, 나중에 포트폴리오로 쓸 수 있게 나만의 관점을 조금씩 담으려 합니다. 대단한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자는 게 아니라, 회사가 사라져도 '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이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록을 적어 두자는 겁니다.
아이에게 내 경험치를 들이미는 게 위험한 이유
"아빠 때는 이렇게 공부해서 대학 갔어"라는 말을 아이에게 꽤 여러 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말이 아이에게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처음엔 요즘 애들이 부모의 말에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버릇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제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책에서는 마인드 마이닝이라고 하여, 빅데이터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적 욕구와 방향성을 캐내는 과정으로, 쉽게 말해 '마음을 캐는 데이터 분석'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보면, 성장기에 어떤 사회적 사건을 경험했느냐가 그 세대의 의사결정 패턴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든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한국의 장년층이 조업하던 시절에는 다 함께 협력하고 때로는 노동권에 저해되더라도 감내해야 한다는 암묵적 압력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 지금 고생하면 나중에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다는 논리로 모두 열심히, 많이, 빨리 했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형성된 가치관을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아이에게 정답으로 강요하는 건, 기후가 바뀐 밭에서 할아버지 농법만 고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2024년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현재 초중고생이 진입할 직업 시장에서 현존 직종의 약 47%가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내가 걸어온 길이 아이에게는 지도조차 없는 길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방임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이 조금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기초 윤리나 기본 학습 역량은 있습니다. 특히 한국처럼 입시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그냥 네 맘대로 해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되겠으며, 그 결과에 대한 리스크는 누가 지느냐는 질문에 책은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실천하는 건 좀 더 소박합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아이가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하는지, 친구들 사이에서 뭐가 유행인지 먼저 물어보는 겁니다. 제가 정답을 내려주려 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데이터를 쌓아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변화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준비가 되어 있으면 기회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위기가 된다는 단순하지만 무게감 있는 메시지입니다.
저에게 가장 와닿은 부분은 '가치관을 먼저 의심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관행적으로 해왔던 것들을 다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남기고 아닌 것은 과감하게 다시 정하자는 얘기였습니다.
성실함, 개인 브랜드, 자녀 교육 세 가지 모두 결론은 같습니다. 지금 당장 내 가치관 중 어떤 것이 앞으로도 유효하고, 어떤 것이 낡아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책 덕분에 그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