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열심히 일하면 생산성이 올라간다"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도 그렇게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하이엇의 『초생산성』을 읽고 나서 완전히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더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일, 중요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이 진짜 생산성이라고 말합니다. 40대 중간관리자로서 읽으면서 공감도 됐고, 동시에 "이게 한국 조직에서 가능한 이야기인가?" 하는 의구심도 생겼습니다.
회의 거절: 용기 있는 선택인가, 무모한 도전인가
매주 월요일 오전, 저는 3시간짜리 주간 전략회의에 참석을 합니다. 제가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입니다. 나머지 2시간 50분은 사실상 무의미하게 회의에 참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 시간에 처리했더라면 퇴근을 당겨줬을 보고서들이 책상 위에 쌓여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초생산성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아니요라고 거절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아니요라고 거절을 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요청이나 참석을 정중히 거절하는 용기의 영역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갈망 영역, 즉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동시에 높은 업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기 위해 나머지를 과감히 잘라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논리에 동의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결과물이 중요하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시각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한국 기업 문화에서 회의란 단순한 정보 공유의 장이 아닙니다. 직급과 위계질서가 공존하는 현장입니다. 40대 중간관리자가 "제 기여도가 낮아서 빠지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순간, 상사가 이를 효율 추구로 읽을 가능성보다 조직에 대한 태만이나 팀워크 부재로 해석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물리적 시간은 벌 수 있지만, 사내 고립이라는 심리적 비용을 치르게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저자가 간과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이론은 개인의 자율적 통제권이 매우 높은 환경을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업무 위임: 팀을 키우는 전략인가, 현실과의 괴리인가
책을 읽으며 생각났던 사람 중 저와 친한 최부장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분인데, 후배가 만든 기획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국 본인이 밤을 새워 수정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내가 하는 게 빠르고 마음 편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데, 그 결과 하루하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었던 초생산성이란 책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초생산성에서는 이런 경우를 위한 위임 7단계 프로세스를 제시합니다. 위임이란 단순히 일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맡길지 결정하고,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고, 업무 절차를 설명하고, 주기적으로 피드백을 제공하는 체계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특히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5%를 제외한 나머지를 후배에게 맡기되, 코치의 역할에 집중하라고 강조합니다.
이론상으로는 최부장이 장기 전략 구상에 집중하고, 후배는 성장 기회를 얻는 윈윈 구조가 됩니다. 실제로 최부장 팀에서도 그런 변화가 조금씩 생기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40대 중간관리자에게 업무상 실수는 곧 본인의 무능함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량이 부족한 후배에게 위임했다가 사고가 터지면, 수습에 드는 시간이 위임으로 번 시간의 몇 배가 되는 상황을 저도 여러 번 겪었습니다.
한국의 고과 시스템, 즉 인사평가 체계는 교육적 관점의 위임보다 완벽한 결과물을 우선시하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적 모순 안에서 위임을 실천하려면, 몇 가지 조건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처음부터 전부 위임하지 말고, 후배의 역량 수준에 맞춰 단계적으로 범위를 넓혀간다, 두 번째로 위임 전에 결과물의 기준을 명확히 문서화해서 공유한다, 세 번째로 중간 점검 시점을 미리 잡아 사고가 터지기 전에 방향을 수정할 여지를 둔다
이렇게 접근하면 "내가 다시 하는 게 빠르다"는 결론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최부장 옆에서 지켜보며 느꼈습니다.
디지털 디톡스: 가족을 위한 선택인가, 직장 신뢰를 잃는 도박인가
퇴근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회사 단톡방 알림이 울립니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고 해도 진동 한 번에 손이 자동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과의 대화가 겉돌고, 아내의 눈치가 슬쩍 신경 쓰이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게 저만의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초생산성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플러그 뽑기(Unplugging)' 전략을 제안합니다. 플러그 뽑기란 특정 시간대에 디지털 기기와 완전히 단절하여 회복의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스마트폰을 물리적으로 봉인하고 가족과의 대화에만 집중하는 식입니다. 저도 이 방법을 며칠 시도해 봤는데, 솔직히 처음 30분은 조금 불안했습니다. 평상시 퇴근 이후에도 연락이 있는 편이라 중요한 연락이 왔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고용노동부의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직장인의 64.7%가 퇴근 후에도 업무 연락을 받는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이 수치는 플러그 뽑기가 개인의 의지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임을 증명합니다.
실제로 40대 중간관리자는 상사의 갑작스러운 지시와 거래처의 긴급 요청이 동시에 몰리는 위치입니다.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사태가 커진다면, 가족과의 화목을 얻는 대신 직장에서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앞섭니다. 저자의 이론은 개인의 통제권이 높은 환경에서 계획된 것이고, 한국의 40대 남성은 조직과 가정이라는 두 시스템 사이에 끼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직장인의 업무 스트레스와 번아웃(Burnout)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공식 직업 현상으로 분류한 바 있습니다(출처: WHO). 시스템 전체를 단번에 바꾸기 어렵다면, 저녁 8시 이후 30분이라도 알림을 끄는 것처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영역부터 시도해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생산성이 제시하는 멈춰라, 잘라내라, 행동하라는 프레임은 분명 강력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이 가장 빛을 발하려면,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조직 문화가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당장 모든 것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이번 주 회의 한 건에 대해서 효율적인 회의가 될 수 있도록 검토해 보거나, 후배에게 작은 과제 하나를 맡겨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결국 작은 실험의 반복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