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선경 작가의 《질문의 격》은 단순히 말을 예쁘게 하거나 정보를 캐내는 기술을 넘어, '나의 질문이 곧 나의 품격이자 삶의 태도'임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마흔을 넘어서며 직장과 가정에서 내뱉는 말 한마디의 무게를 매일 실감하던 차에 알게 된 이 책은, 그동안 당연하다고 믿었던 내 소통 방식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상대의 정답을 재촉하며 날카로운 같은 질문을 던지기보다,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격이 있는 질문을 건네며 일과 일상에서 '격'을 지키는 단단한 어른이자 가장으로 바로 서보고자 합니다.
질문의 격: 나를 지키는 말그릇
매주 월요일 오전 주간 회의 시간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부하 직원들을 몰아세우는 ‘심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왜 아직도 이렇게 진행이 안되고 있습니까? 대리님이 생각하는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은 겉으로는 원인을 묻고 있지만, 실상은 상대에게 책임을 묻고 핀잔을 주려는 취조에 가까웠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던 구절은 바로 질문이 ‘권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던진 질문들은 언제나 제 지위와 경험을 확인받기 위한 방어벽이자 상대를 주눅 들게 만드는 도구였습니다. 진정한 질문의 격은 상대를 제 입맛에 맞게 통제하려는 욕망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던진 무례한 질문들이 결국 제 얕은 생각의 그릇과 리더십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표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가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를 직시하는 순간부터 변화의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단순히 답을 강요하는 질문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일의 맥락을 짚어보고 주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여백을 주는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부하 직원에게 “이 단계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무엇일까요?”라는 식으로 질문의 방향을 틀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 언어의 온도를 낮추고 질문의 격을 높이는 것만이, 경직된 한국 조직 속에서 제 품위를 지키고 팀원들과 진짜 협력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길임을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온도: 가족을 품는 빈칸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거실에서 뒹굴며 깔깔대던 초등학생 두 딸이 슬그머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쓸쓸함을 느낀 지 꽤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당신이 집에 오면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사사건건 캐물으니까 애들이 숨 막혀하지”라는 핀잔을 듣고 말았습니다. “오늘 학원에서 뭐 배웠어?”, “시험은 잘 봤어?”처럼 결과만을 확인하려는 제 질문들은 아이들에게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보고’에 불과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질문의 격》에서 말하듯, 상대의 마음을 여는 질문은 답이 정해진 사지선다형이 아니라 스스로 채워 넣을 수 있는 ‘빈칸’이어야 합니다. 질문을 가장해 아이들의 하루를 통제하고 제 불안을 해소하려 했던 이기적인 태도를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것은 정답을 요구하는 다그침이 아니라, 아빠가 언제나 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따뜻한 관심의 질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퇴근 후 아이들에게 건네는 질문을 “오늘 가장 재밌었던 일 하나만 아빠한테 들려줄 수 있어?”로 바꾸고, 설령 아이들의 대답이 엉뚱하거나 부족하더라도 섣불리 가르치려 들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의 온도를 높여 가족들의 마음속에 제 자리를 만드는 법은, 질문 속에 제 생각과 욕심을 빼고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생각에 대한 빈칸을 남겨두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본질의 질문: 흔들리지 않는 중심
마흔 중반의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매일 아침 거울 속에서 조금씩 지쳐가는 저 자신과 마주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위에서는 실적 압박이 내려오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사이에 끼여, 제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그동안 저는 세상이 정해놓은 “언제쯤 대기업 임원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까?” 같은 질문들만 스스로에게 끝없이 던지며 저의 시간과 영혼을 갉아넣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문득 깨달은 것은, 제 삶이 흔들렸던 진짜 이유가 세상이 던지는 얄팍한 질문들에 휩쓸려 내 삶의 본질을 묻는 진짜 질문을 잊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수준이 곧 제 삶의 방향과 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성공의 기준에 맞춘 질문 대신, 제 내면을 향한 단단하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삶의 중심을 잡고자 합니다. “나는 어떤 가치를 지키며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은 걸까?”, “오늘 내 선택은 훗날 내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정인가?” 같은 질문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주는 묵직한 이정표가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요란하게 흔들어대더라도, 제 안의 본질적인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만 있다면 마흔 이후의 삶은 결코 방황하지 않고 올곧게 여물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