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정 작가의 《일의 격》은 단순한 업무 스킬을 넘어, 일과 삶의 본질을 연결하는 통찰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마흔을 넘기고 조직과 가정에서 책임의 무게가 더해질 때마다 흔들리던 제 중심을 잡아준 고마운 길잡이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 담긴 격언들을 거울삼아, 직장이라는 거친 야생과 가정이라는 소중한 울타리 안에서 제가 직접 겪고 깨달은 바를 생각하며 앞으로의 삶에 적용하고자 합니다.
태도와 실력의 균형
직장 생활이 15년을 넘어가고 팀을 이끄는 위치에 서게 되면서, 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라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을 보면 남다른 기술이나 배경 없이도 늘 큰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동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순히 손이 빠르거나 아는 게 많아서가 아니라, 어떤 까다로운 업무가 주어져도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믿음직스러운 태도를 갖추었다는 점입니다. 반면 아무리 똑똑해도 매사에 차갑고 "내 일만 하겠다"며 선을 긋는 직원은 결국 조직 내에서 고립되고 맙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테크닉은 평준화되지만, 일을 마주하는 태도에서 오는 격차는 좁히기 힘들 만큼 벌어집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작가의 주장을 전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태도가 격을 만든다고 강조하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숨 가쁜 조직 환경에서 과연 좋은 태도만으로 생존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강한 의문이 듭니다. 아무리 태도가 훌륭하고 인품이 좋아도, 당장 눈앞의 인사고과와 수치화된 성과를 증명하지 못하면 '무능한 착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현실은 냉혹하게도 결과로 말하며,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좋은 태도는 때로는 무책임한 낙관론이나 무능을 감추려는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조직은 결국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에, 태도의 격을 논하기 전에 각자가 가진 기술적 전문성과 대체 불가능한 역량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태도라는 아름다운 내면의 가치가 빛을 발하려면, 그것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압도적인 실행력과 실력이라는 단단한 능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장과 직원의 위임
관리자로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부분은 리더의 역할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팀원들의 실수를 수용하려 하지 않아 사소한 서류 검토부터 기획안 수정까지 모든 과정을 제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던 깐깐한 관리자였습니다. "내가 직접 하는 게 속 편하고 빠르다"는 핑계 뒤에는 사실 팀원들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마음과, 혹시 모를 실패의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모든 결정을 내리는 동안 팀원들은 수동적인 지시만 이행하는 소모품으로 전락했고, 그들의 성장 가능성은 제가 쳐놓은 한계선을 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진짜 리더는 권한을 위임하고 그들이 실패할 기회와 비용을 기꺼이 감당해 주는 사람임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제시하는 위임과 성장의 방법론은 다분히 이상적이고 너무 교과서적인 접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실무 현장에서는 권한을 넘겨주고 성장을 독려해도, 이를 '귀찮은 업무 떠넘기기'로 받아들이거나 역량 부족으로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주니어 직원들이 수두룩합니다. 게다가 실패의 비용을 리더가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실패 한 번에 자리가 날아갈 수 있는 임시직 계약직과 다름없는 현대 직장인 관리자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요구입니다. 책의 조언처럼 무조건적인 위임과 믿음을 주기에는 조직사회는 너무 각박하고, 실패에 대한 관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 없는 아름다운 성장의 서사보다는, 직원의 역량 수준에 따라 위임의 범위를 설계하는 구체적인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리더의 희생만을 담보로 하는 성장이 아니라, 조직의 시스템이 실패를 받쳐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위임이 완성된다고 생각 듭니다.
균형과 가장의 책임
《일의 격》이 제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일에서의 성공이 삶 전체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며 진정한 격은 일터 밖의 일상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는 통찰이었습니다. 마흔 줄에 접어들어 회사 일에 치여 매일 밤늦게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열 때마다, 거실 불을 끈 채 잠든 아내와 훌쩍 커버린 초등학생 두 딸의 얼굴을 보며 늘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회사의 자산 가치를 올리고 조직을 확장하는 데는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왜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가족이라는 시스템을 경영하는 데는 이토록 소홀했는지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일터에서의 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가족과의 저녁 식사, 아이들의 사소한 재잘거림을 귀담아듣는 시간보다 우선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도 책이 주는 메시지는 현실적인 부분에 비해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느껴집니다.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가정에서의 격을 지키라는 조언은 너무나도 동의하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에서 40대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늘어나는 아이들의 교육비와 노후 자금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압박을 온몸으로 버텨내는 시기입니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장 일터에서의 몰입을 줄이고 가정에 집중하라는 것은 어쩌면 커리어의 정체나 도태를 감수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작가는 삶의 균형을 쉽게 말하지만, 현실의 가장들은 매일 아침 생존과 행복이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균형의 상태가 아니라, 내가 왜 이토록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지 그 목적지가 결국 '가족의 행복'임을 잊지 않는 온전한 자각과, 아주 작은 시간이라도 깊이 있게 가족에게 몰입하려는 주도적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