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되면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3월이면 흐지부지되고, 연말에는 또다시 "내년엔 목표를 잡고 열심히 해봐야지"를 되뇌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위대한 12주'라는 책을 접하면서 시간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됐는데, 동시에 40대 가장으로서 이 책이 정말 현실적인 해답을 주는지 의문도 들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말의 함정, 소외감
2년 전 제가 가족들을 위해 주말 특근까지 해가며 가족 여행 경비를 마련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여행지에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멋진 풍경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상상을 하며 정말 열심히 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특근과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맞이해 주는 사람 없이 다들 자고 있고 혼자 씻고 와서 조용히 누울 때 괜스레 마음이 허전함을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외식 자리에서 아내와 두 딸이 셋이서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대화에 끼지 못하고 숟가락만 만지작거렸던 그 순간, 뭔가 나 혼자 겉도는 느낌을 받았고,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소외감을 느끼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대한 12주'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외부 동기, 즉 가족의 인정이나 반응에 의존하기보다 내적 동기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내적 동기란 타인의 평가와 무관하게 스스로 부여하는 행동의 이유를 뜻합니다. 책의 논리대로라면, 일의 의미를 가족에게서 찾기 때문에 가족이 예상대로 반응하지 않을 때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에도 회의감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책의 주장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안 맞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내적 동기를 바로 세우는 게 게 분명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제가 실제로 시도해 보니,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다시 정리했을 때 하루하루가 조금 덜 버겁게 느껴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순전히 개인의 심리적 태도 문제로 한정하는 건 너무 개인에게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직장인의 평균 근무시간은 OECD 회원국 중 최상위권에 속합니다(출처: OECD). 쉽게 말해 물리적으로 가족과 함께할 시간 자체가 구조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소외감의 원인 중 상당 부분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가족들 간의 같은 공감을 함께 느끼기에는 시간의 절대 부족이라는 현실적 문제에 있습니다. "내가 왜 일하는지 의미를 찾으라"는 조언만으로는 이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거절이라는 선택, 관계를 지키는 방법인가
두 번째로 책이 제시하는 해법 중 하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거절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란 상대방의 기대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필요를 뒤로 미루는 심리 패턴을 말하며, 스스로 느낄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지 못해 과부하 상태에 빠지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 조언을 들었을 때 저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부모님, 동생, 아내, 아이들까지 크고 작은 부탁들 하나하나가 별거 아니지만, 이일들이 쌓이면 상당히 무겁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실제로 몇 가지 부탁에 어려울꺼같은 일에 대해서는 "이번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해보았고,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고 해서 그렇게 관계가 잘못되거나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언이 한국의 관계 문화에서 어느 정도까지 통용될 수 있는지는 솔직히 의문점이 남습니다. 거절이라는 방법이 심리적 중압감을 덜어내기도 하지만, 관계의 균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책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 연로한 부모님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의 느끼는 죄책감은 책에서 말하는 '심리적 해방감'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울러, 한국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상사나 다른 직원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팀 내 협업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인사고과에도 영향을 까칠 수가 있습니다. 과연 거절이라는 방법이 심리적인 중압감을 덜어주는 개념으로만 볼 것인지, 아니면 관계를 망가트릴 수 있는 개념으로 볼 것인지 잘 생각해봐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거절도 때와 상황을 봐가며 적절하게 활용해야 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습니다.
친구의 부고 이후, 삶의 해방이 와닿은 이유
세 번째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가장 무거운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작년 평소 건강상 아무 이상 없던 친구가 퇴근길에 쓰러져서 손쓸 틈도 없이 떠나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판정을 받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완전히 기가 꺾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도 사소한 몸의 이상에 불안해지고, 업무에 집중이 안 되는 시간이 꽤 있었습니다.
위대한 12주에서는 나중을 위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마찬가지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부분도 강조를 합니다.
바쁘다고 힘들다고 지금 이 순간을 등한시한다면 나중 어떤 시기가 온다 하더라도 똑같이 등한시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개념은 솔직히 처음엔 너무 추상적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죽음 이후에 우연찮게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보니 조금 다르게 와닿았습니다. 막연하게만 느꼈던 죽음이라는 것이 내 주변 가까이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평범한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귀하게 느껴졌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보냈던 하루하루가 값지게 느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도 맞지만, 현실적인 부분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40대 가장은 주택 대출금, 자녀 교육비, 생활비, 부모님 부양 등등 미래를 위한 대비가 가장 치열할 시기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한 결단보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주는 공포가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내 40대의 노후 준비 현황을 보면 상당수가 충분한 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출처: 통계청).
그렇다고 이 책의 메시지가 완전히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떻게 버틸 것인가"라는 질문에만 집중하게 되면 방향감각을 잃고 번아웃(Burn-out)에 빠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붙들어야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점에서, 12주라는 짧은 주기로 삶을 점검하는 방식 자체는 분명히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이 40대에게 완전한 답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심리적 전환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실의 무게가 가벼워지지는 않습니다. 12주 단위로 목표를 쪼개고 매주 점검하는 방법론 자체는 충분히 써볼 만합니다. 다만 그 안에 담기는 내용이 자기 위안에만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과 현실적인 대안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 제가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입니다. "지금 시작되는 12주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스스로 묻는 것, 그게 이 책이 주는 가장 현실적인 선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