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40대 관리자가 된 지금, 저는 오히려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더 자주 멈칫합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 한 권이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 그리고 제 현실에서 어디까지 통하는지 솔직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현장감 — 익숙함을 깨야 살아난다
몇 달 전, 오랫동안 같은 팀에서 일하다 조직 개편으로 관리 부서로 발령받은 선배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회계 업무로 입사해 부장 직급까지 올라간 분이었는데, 갑자기 전혀 해본 적 없는 관리 실무를 맡게 된 겁니다.
직급은 부장인데 업무 숙련도는 주임 수준이다 보니 후배들 눈치를 봐야 했고, 자괴감도 상당했다고 하셨습니다. 직접 들었을 때 그 표정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선배에게 이 책을 건네며 저자가 강조하는 개념 하나를 전했습니다. 바로 현장 지식(Field Knowledge)입니다. 여기서 현장 지식이란 책상 위 보고서나 숫자로는 절대 포착되지 않는, 현장에서만 감지되는 살아있는 정보와 판단력을 뜻합니다. 저자는 이것을 "현장에 신이 있다"는 표현으로 압축하였습니다.
선배는 그 이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현장에 직접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해 보였지만, 복잡한 문제가 터졌을 때 "어떻게 됐어?"라고 묻는 대신 "내가 이 부분 직접 검토해 볼게"라며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그때 느낀 건, 관리자의 권위는 직급이 아니라 현장을 책임지는 태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도 있습니다. 관리자가 실무에 지나치게 몰입할 경우 발생하는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로 후배들이 업무를 직접 경험하며 성장할 기회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 후배들 역시 업무를 배워야 하고, 경험해야 할 때인데 그러질 못하면 후배들도 성장이 더뎌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관리자 본연의 역할인 전략적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직급이 있는 관리자급을 현장으로 보낸다는 것은 궂은일을 하라고 보냈다기보다 그곳에서 본인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수행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보낸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본인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후배들이 할 일을 한다면 팀의 방향성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현장을 이해하는 것과 현장에 매몰되는 것은 다릅니다. 40대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건 현장감을 바탕으로 한 더 상위의 판단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속의 힘 — 꾸준함이 쌓이면 다른 사람이 된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책에서 교세라 창업 초기에 만난 직원 한 명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 직원은 특별한 재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20년 후, 그는 사업부장으로 성장해 회사의 핵심 인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자는 그 비결을 지속성(Persistency)이라는 단어로 설명합니다. 지속성이란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행동을 흔들림 없이 반복하면서 능력과 인격을 함께 갈고닦는 과정을 말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최근 저는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와 촉박한 일정 사이에서 "대충 적당히 넘어가자"는 유혹과 계속 싸워야 했습니다. 40대가 되면 경험이 쌓이다 보니 적당히 해도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함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자가 말한 낙관적 구상과 비관적 계획이라는 개념을 업무에 적용해 봤습니다. 계획 단계에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여기서 최악의 변수가 생긴다면?"이라는 질문을 한 번 더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 결과물을 보내기 전, 단어 하나, 숫자 하나를 꼼꼼히 재검토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이미 꼼꼼하게 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한두 번 더 확인하면 반드시 뭔가 하나씩 틀린 부분이 나오곤 합니다.
다만 저자의 주장에서 한 가지는 걸립니다. "신이 도울만큼의 몰입"이라는 표현은 고도 성장기 일본의 기업 문화를 배경으로 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직장인의 번아웃(Burnout)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가족과의 시간도 지켜야 하는 40대에게 모든 일에 100% 몰입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조건적인 완벽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덜어내는 선택적 집중(Selective Focus)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타심 — 베푼다는 것의 현실적 조건
저자는 "이타심이 최고의 자리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단언합니다. 저 역시도 많이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후배들과 협업할 때 제가 가진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하고,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공을 팀원들에게 돌렸더니 후배들이 오히려 제 이야기를 더 잘 듣게 됐습니다. 이타적 행동이 심리적 신뢰감을 쌓는다는 걸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좀 더 복잡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기업의 성과 평가 체계는 여전히 상대 평가 방식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환경에서 내가 공들여 공유한 노하우로 후배가 먼저 승진하고, 정작 나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상황은 이제 드문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국내 기업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 수준은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편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경영학회).
이타심이 지속되려면 개인의 결단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조직 차원의 심리적 안전감과 그에 따른 정당한 보상 시스템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저자의 철학은 분명 깊은 울림이 있지만, 40대 가장에게는 그 철학을 나의 생존과 가족의 안정이라는 기준으로 한 번 걸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은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겪어보니, 좋은 철학도 현실이라는 벽을 넘어야 비로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말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보다, 그 본질만 꺼내 나만의 방식으로 실행하는 것이 40대에게 맞는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저자의 철학은 흡수하되, 실행은 내 상황에 맞게 조율하는 방법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