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정이 넘치는 리더가 팀을 망친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정말 그런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이것이 단순한 책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을 읽으며 제 주변에서 직접 목격한 세 가지 모습이 겹쳐 보였고, 에고(ego)라는 것이 얼마나 조용하고 무섭게 사람을 잠식하는지 다시 실감했습니다.
과거의 성공이 독이 되는 순간
일반적으로 경력이 쌓일수록 노하우가 늘어나고 더 좋은 리더가 된다고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경험해 보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고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라고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는 40대 중반의 한 팀장님은 대기업에서 17년을 견디며, 팀장 자리에 오른 분입니다. 본인이 실무자 시절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성과를 냈던 방식을 지금도 그대로 팀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MZ세대 사원들과의 소통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과거의 성공 경험이라는 에고에 갇혀 "본인 방식이 맞다"며 다른 사람 이야기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책의 저자인 라이언 홀리데이가 말하는 에고는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올바르지 못한 믿음, 즉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서 누구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많이 인정받아야 한다는 집착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팀장님은 팀원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고, 부서 평판이 바닥을 쳤으며 실적까지 급락했습니다. 그제야 자신의 에고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쏟아진 평판은 되돌리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리더의 역할은 본인이 경험한 과거의 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변화를 파악하고 팀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걸 보이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주의가 조직을 침묵시키는 방식
요즘은 수평적 조직 문화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직급이 높아질수록 이런 전환이 더 힘겨운 분들이 오히려 많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회사 동기인 권 차장은 부장 승진을 앞둔 중간관리자입니다. 회의 중 새로 들어온 MZ세대 대리가 데이터와 논리를 근거로 기획안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자, 순간 얼굴이 붉어지며 모욕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문제점을 검토하기보다 "감히 아랫사람이 내 권위에 도전한다"는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하면서, 회의 도중 대리의 태도를 문제 삼아 심하게 혼냈다고 합니다.
이후 결과는 예상한 대로 팀 안에 그 누구도 그 어떤 의견도, 바른말도 하지 않는 침묵의 문화가 자리 잡았고, 부실한 기획안이 그대로 실행되어 회사에 실질적인 손실을 입혔습니다. 논리를 논리로 받아치지 못하고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은, 사실상 본인의 역량 부족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61.3%가 상사의 눈치 때문에 반대 의견을 말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권 차장 같은 리더십이 조직 내 심리적 안전감을 얼마나 갉아먹는지 수치로도 확인되는 셈입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팀원들이 비판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고 느끼는 조직 내 분위기를 말합니다. 권 차장처럼 본인의 에고를 통제하지 못한 리더가 초래하는 부작용을 정리해 보자면, 첫 번째로 팀 내 반대 의견이 사라지고 아무도 의견을 내놓지 않는 정적인 문화가 자리 잡히고, 두 번째로 부실한 의사결정이 검증 없이 실행되어 실질적 손실로 이어지며, 세 번째로 구성원의 심리적 안전감이 낮아져 우수한 인재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네 번째로 리더 본인의 평판과 승진에 치명적인 오점이 남게 됩니다.
가장이 가정고립이 되는 이유
솔직히 이 세 번째 이야기가 저를 가장 오래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밖에서의 역할이 집 안으로 그대로 적용되는 것, 생각보다 훨씬 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그 팀장님은 퇴근 후 집에서도 직장에서의 권위적 태도를 그대로 유지했다고 합니다. 아내의 고충이나 사춘기 자녀의 고민을 경청하기보다 "내가 돈 벌어다 주느라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느냐"며 훈계하는 말투로 가족을 대했습니다. 가족 구성원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직장에서 상처받은 에고를 충전하는 대체 조직처럼 취급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가장이니 내 생각과 내 뜻이 정답"이라는 에고는 결국 가족들로부터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만들었고, 집 안에서 철저히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가장의 권위는 경제적 기여를 빌미로 훈계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경청하고, 각자를 인격체로 존중하는 헌신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의 직급은 퇴근과 동시에 회사에 두고 와야 할 역할일 뿐, 가정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여야 합니다.
세 가지 사례 모두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것은 하나입니다. 에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가까운 것들을 조금씩 갉아먹는다는 점입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스스로를 점검하지 않으면 에고는 더 단단하게 굳어집니다.
"에고라는 적"이 말하는 핵심은 결국 이것입니다. 열망할 때도, 성공했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에고를 의식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결국 오래갑니다. 책 한 권이 삶을 바꾼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읽다 보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이야기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주변에서 비슷한 모습을 발견했다면, 혹시 그 모습이 자신에게도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