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40대 가장 중 상당수가 집, 사업, 자녀 교육이라는 세 가지 선택 앞에서 한 번씩은 크게 흔들립니다. 저는 가까운 친구와 두 분의 부장님을 통해 그 흔들림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게 저는 가장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영끌과 갭투자, 가족을 위한 선택이 하우스푸어를 만들다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2024년 말 기준 1,900조 원을 넘어섰습니다(출처: 한국은행). 제 친구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누군가의 삶 그 자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친구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지금 안 사면 영원히 못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습니다. 당시 언론과 주변 분위기가 그 불안을 계속 부추겼고, 친구는 영끌(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전세보증금 등 가능한 모든 차입 수단을 동원해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 )과 갭투자(전세가와 매매가의 차액만 투자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 전략)를 동시에 감행했습니다.
제가 직접 친구 얘기를 들어봤는데, 그 결과는 잔인했습니다. 고금리가 예상보다 훨씬 오래 이어지면서 월 급여의 절반 이상이 이자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집값마저 하락하면서 위험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아내와의 말다툼이 잦아지고, 제 앞에서 눈물을 흘린 날도 있었습니다. "가족한테 더 나은 환경을 주려고 했던 건데, 본인이 오히려 가족을 더 힘들게 만든 것 같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남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이 실제로는 시장 과열 분위기에 편승한 결과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진정한 재무 안정성은 자산 가격의 우상향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현금 흐름이 무너지지 않는 구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기본을 지키지 않은 채 감당 불가능한 레버리지를 끌어다 쓴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다고 봅니다.
명함을 떼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창업 실패의 민낯
어느 날 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부장님과 식사를 하며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10년 넘게 대기업 조직에서 성과를 내왔으니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 자신감이 어디서 왔는지는 솔직히 이해가 갑니다. 저도 비슷한 환경에 있었다면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자신감의 뿌리가 본인의 순수한 역량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에 기대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창업 생존율 통계를 보면 그 냉혹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변에서도 보면 가계가 수시로 바뀌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거고, 한번 간 가계는 두 번은 못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폐업률 및 업종 변경이 잦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부장님은 퇴직금과 대출금을 합쳐 소규모 점포를 열었지만, 경기 침체와 고정비 부담이 겹치면서 2년도 버티지 못하고 권리금 한 푼 못 받고 문을 닫았습니다. 권리금조차 건지지 못했다는 건 이미 시장에서 그 가게의 영업 가치가 없어졌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현재 창업의 현실은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지인이 그렇게 무너지는 걸 가까이서 보면서, 창업이 도피가 되는 순간 실패 확률이 얼마나 높아지는지를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회사 생활이 싫어서 나오는 것과, 시장에 명확한 기회를 발견하고 나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번 아웃(Burn-out)과 창업 의지를 혼동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조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기러기아빠가 치른 대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또 다른 부장님과 식사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는 더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아이들에게 더 넓은 교육 환경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가족을 해외로 보내고 혼자 남았다고 합니다. 매달 수백만 원을 송금하기 위해 좁은 방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고, 그 수년의 세월이 지나고 남은 건 망가진 건강과 가족과의 정서적 단절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제가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아이들이 돌아와서 아버지를 서먹하게 대하더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한 선택이고, 그렇게 수년간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노력했건만 돌아오는 결과는 어색함뿐이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 순간 부장님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왔을까 하는 허무함만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물리적 거리가 곧 정서적 거리로 이어진다는 이 원칙은, 안타깝게도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메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해 본다면, 부모의 희생을 미덕으로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정작 본인의 건강과 관계를 완전히 방치한 채 유지되는 희생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가장이 쓰러지면 가족 전체가 흔들린다는 단순한 이치를, 그 시간 동안 너무 쉽게 잊고 살았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족을 위한 선택이라는 명목 아래 관계의 공백을 돈으로 채울 수 있다고 믿는 것, 그게 어쩌면 이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세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제가 얻은 결론은 하나입니다.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으며, 의도의 순수함이 판단의 오류를 없애주지도 않습니다. 하우스푸어든, 창업 실패든, 기러기아빠든 그 선택의 출발점에는 모두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스크를 계산하지 않은 사랑, 시스템 없이 감행한 결단, 관계를 뒤로 미룬 헌신은 결국 비슷한 방식으로 무너졌습니다. 지금 40대의 선택 앞에 서 있는 분이라면, 의도가 아니라 구조를 먼저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