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는 "또 미니멀리즘 얘기겠지"라며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 동기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의 "단순하게 살아라"는 1천만 부가 팔린 자기 계발서의 고전인데, 그 안에 담긴 조언이 좋지 않은 쪽으로 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집을 사고 나서 생긴 일 — 소유의 덫
요즘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말로 영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다는 뜻으로, 요즘 4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제 회사 동기가 딱 그 케이스였습니다. 가족에게 안정적인 거주 공간을 마련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수도권에 아파트를 샀는데, 막상 잔금을 치르고 나서부터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매달 원리금 상환이 시작되면서 숨이 막힌다고 했습니다. 쉽게 말해 집을 소유하는 순간 그 집 값의 상당 부분을 매달 부담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게 된 거였습니다.
책에서 자이베르트는 이 상황을 소유 노예화(Possession Slavery)로 설명합니다. 소유 노예화란 어떤 물건이나 자산을 가지는 순간, 그것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오히려 자신의 자유와 시간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뜻합니다. 직접 겪어보니 이 말이 얼마나 맞는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기는 집값이 오를까 내릴까를 매일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확인하고, 가족들과 외식 한 번 하는 것도 망설이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부분에서 책의 지적에 100%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 집은 단순한 과시용 소유물이 아닙니다. 전세 사기와 2년마다 반복되는 이사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영끌을 택한 선택 자체가 탐욕이라고만 몰아세우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정말 안락한 거주만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상급지를 고를 필요는 없었을 겁니다. 자이베르트의 비판대로, 끝없이 더 좋은 지역과 더 넓은 평수를 향해 달리는 욕망이 결국 현재의 삶을 구속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입니다.
정작 소주 한잔 기울일 친구는 없다 — 관계 정리의 민낯
40대에는 이상하게 약속이 많아지는 게, 고등학교 동창회, 대학 동문 모임, 전 직장 동료 경조사까지 챙기느라 분주해집니다. '마당발 인맥이 곧 능력'이라는 사회적 시선도 있고, 나중에 내 아이 결혼식에 텅 빈 식장을 마주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상한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정작 제가 정말 힘들고 지칠 때 소주 한잔 기울이며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 말입니다.
책에서는 이를 관계의 엔트로피(Relationship Entropy) 문제로 이야기합니다. 엔트로피란 관계가 넓어질수록 오히려 에너지가 분산되어 정작 중요한 관계에 쏟아야 할 힘이 소멸되는 상태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관계가 많아질수록 깊어지는 게 아니라 얕아진다는 겁니다.
물론 인간관계가 여러 분야에서 크게 적용되는 한국사회에서 인맥 관리는 단순한 허세로 단정 짓기에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저 사람 의리 없다"는 평판이 돌기 시작하면 업무 환경에서도 불이익과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텅 빈 장례식장을 마주하게 될까 봐 울며 겨자 먹기로 봉투를 들고 뛰어다니는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이는 개인의 허영이 아니라 촘촘한 안전망이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품앗이 형태로 유지되는 관례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양가 없는 자리를 전전하면서 정작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피곤하다"는 한마디로 방치하게 된다면, 그건 관계 관리가 아니라 관계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비즈니스 네트워크(Business Network)란 단순한 인원수가 아니라,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연결된 관계입니다. 숫자만 채워놓고 비즈니스 네트워크라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인간관계인지를 체크하는 포인트로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나를 만난 뒤 에너지를 얻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할 것, 두 번째로 의무감으로 유지하는 관계와 진심으로 이어가는 관계를 분리해서 볼 것, 세 번째로 정말 힘들 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세어볼 것. 이 정도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았을 때 망설임이 있다면 지금 관계의 방향성을 바꿀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집 안에서 혼자인 아버지 — 가족 소통이 무너지는 방식
제가 직접 본 풍경으로, 퇴근 후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가족들이 서먹하게 인사하고 각자의 방으로 사라지는 순간의 공기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밖에서 온갖 눈치를 보고 힘들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집에서도 존재감 없이 소파에 앉아 혼자 스마트폰을 보고 있자면 묘하게 슬퍼지곤 합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일하는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 말속에는 생색이 아니라 알아달라는 처절한 애원이 담겨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이 고립의 일등 공신이 결국 제 무관심과 안일함이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정서적 저축(Emotional Investment)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의 감정적 교류를 꾸준히 쌓아가는 행위를 뜻합니다. 아이가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려할 때 "나중에"라고 잘랐던 순간들, 아내가 대화를 시도할 때 TV를 보며 못 들은 척했던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서 정서적 저축이 바닥이 난 것입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가족 내 정서적 소통이 부족한 중년 남성은 우울 증상을 경험할 위험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당히 높습니다(출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돈을 벌어다 주는 것과 정서적으로 함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른 역할입니다. 책이 말하는 단순한 소통이란 거창한 대화법이 아니라, 오늘 밥상에서 아이 눈을 보며 "오늘 어땠어?" 한마디 건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결국 이 책은 관계를 위한 교과서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사는 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뭘 지켜야 할지 명확히 아는 상태가 단순함이라는 것을 책을 보며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