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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스틱

by yoo12191 2026. 4. 24.

회의를 잘 이끌수록 오히려 소통이 안 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경력 18년 차 동기가 타 부서와 회의를 할 때마다 대화가 겉도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나서야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많이 알수록 전달하는 메시지가 명확해질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꽤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이유와 실제 현장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는지 제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식의 저주, 많이 알수록 왜 말이 안 통할까

책에서는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는데, 일단 무언가를 알게 되면 모르는 상태가 어떤 느낌인지 더 이상 떠올릴 수 없게 되는 인지 편향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인지 편향이란 사람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판단이 왜곡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 동기 이야기를 예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관련 업무 경력이 거의 18년에 달하는 사람인데, 타 부서와 협업 회의를 할 때마다 우리 팀끼리만 쓰는 전문 용어를 자연스럽게 쏟아냅니다. 본인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말인데, 회의실 반 이상이 표정이 굳어 있는 걸 정작 본인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후 저도 같은 회의에서 의식적으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우리 업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발언을 단순화해 봤습니다. 회의 후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실제로 업무 진행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대략 세 가지 정도의 이유인 거 같습니다. 첫 번째로 용어의 무의식적 사용하므로서, 업무 미관련자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로 듣는 사람의 배경 지식을 멋대로 예상하고, 말하는 사람 중심의 언어로 구성하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로 내가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반이 되는 설명은 필요 없다고 생각이 들어 맥락 없이 결론부터 이야기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저의 회사처럼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서 경력이 꽤 많은 관리자가 너무 쉬운 표현만 쓰면, 임원들 입장에서는 전문성이 부족해 보인다고 느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순함을 추구하다가 자칫 가벼움으로 오해받아 신뢰도를 깎아내리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되,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메시지를 조절하는 감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성이 실행을 만든다, 하지만 함정도 있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자주 거론되는 개념 중 하나가 메시지 구체성(Message Concreteness)입니다. 메시지 구체성이란 추상적인 언어 대신 감각적이고 시각적인 이미지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듣는 사람이 머릿속에 장면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합니다. 인지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추상적 개념보다 구체적 이미지를 훨씬 더 잘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

올해 초 팀 연간 계획 수립 과정에서 이걸 직접 경험했습니다. 팀장님이 내세운 목표는 "고객 만족도 10% 향상"이었는데, 팀원들 반응이 하나같이 맥 빠진 표정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지 잘 몰랐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 슬로건에는 아무런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목표를 "우리 고객이 서비스를 받고 나서 진작에 이용할걸 하는 생각이 들게 하자"는 방향으로 바꾸고, 실제 고객 칭찬 메일을 팀원들에게 공유했습니다. 각자 자기 업무 방식이 어떻게 그 결과로 이어지는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실행력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관해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측정하기 어려운 구체성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칭찬 메일을 받는 것"이라는 기준이 너무 주관적으로 인식될 경우, 팀원들은 성과 기준을 맞추기보다 팀장 기분을 맞추는 감정 노동에 더 에너지를 쓰게 됩니다.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되, 그것이 측정 가능한 행동 지표와 연결되어야 진짜 효과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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