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하지 않으면 왜 몰라줄까 속상했던 적, 한 번쯤은 있지 않으셨습니까? 구범준 PD의 책 '마음을 읽는 감각'을 읽으며 저는 그 속상함의 정체를 처음으로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완벽하게 읽을 수 있다는 오만을 내려놓는 순간, 오히려 관계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말 안 해도 알겠지, 투명성의 환상
"내가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이런 생각, 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마음을 읽는 감각에서는 이를 투명성의 환상(Illusion of Transparency)이라고 하는데 심리학에서도 많이 다루는 개념으로, 자신의 내면 감정이나 상태가 마치 유리처럼 겉으로 다 비쳐 보인다고 착각하는 심리 현상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느끼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히 눈치챌 것이라고 믿는 착각입니다.
저는 이 개념을 접하며, 40대 가장들의 모습이 딱 떠올랐습니다. 직장에서 온종일 실적 압박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다 녹초가 된 몸으로 퇴근한 뒤, 그 어떤 짐도 가족에게 전가하고 싶지 않아 소파에 털썩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속으로는 아내나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 "오늘 힘들었지?" 한마디 건네주길 간절히 바랄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알아채지 못하면 "어떻게 이렇게 있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를 수 있어" 하며 서운함이 쌓이곤 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다시 생각해 보면, 표현하지 않은 피로감은 상대에게 따뜻한 신호가 아니라 그냥 접근하기 어려운 차가운 분위기만 드러낼 뿐입니다. 제 경험상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타인의 내면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원망하기 전에 자신의 상태를 담백하게 드러낼 수 있는 성숙한 소통이 먼저라는 걸, 이 책이 다시 한번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 지식의 저주
여러분 주변에도 이런 상사 한 명쯤은 계시지 않습니까? "그냥 늘 하던 방식으로 핵심만 요약해 와"라고 툭 던지고는, 본인 예상과 다르게 전혀 다른 결과물을 해오면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거야?"라며 답답해하는 분 말입니다.
마음을 읽는 감각에서는 이런 경우를 바로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고 표현하는데,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나 경험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지적 착각입니다. 전문가일수록, 경험이 많을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제가 주변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팀에서 15년 넘게 묵묵히 일해 온 이 차장은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며 나름대로 배려한다고 간결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지시를 받은 직원은 어느 양식을 써야 할지, 어느 수준까지 분석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차장의 예상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보고서가 올라오고, 이 차장은 "매번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해야 하냐"며 질책을 해버렸습니다. 제가 봤을 때에는 두 사람 모두 억울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핵심은 이렇습니다. 15년의 경험이 머릿속에 쌓여 있는 사람과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의 기준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모호한 지시는 배려가 아니라 불친절한 업무 지시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는 알겠지'라는 안일함이 결국 상대의 무능이 아닌 본인의 소통 실패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실제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에서도 리더의 불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팀 성과 저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출처: Harvard Business Review). 내가 아는 것을 상대는 모를 수 있다는 단순한 전제 하나만 기억해도 조직 내 많은 갈등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나를 보고 있다는 착각, 조명 효과
중요한 회의에서 보고를 잘못했다고 혼자 후회하며, 밤새 뒤척인 경험, 혹시 있으십니까?
마음을 읽는 감각에서는 이를 조명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정의하는데, 무대 위의 주인공이 강렬한 조명을 받듯,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행동과 실수를 집중적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과대평가하는 현상입니다. 미국 코넬 대학교의 심리학자 토마스 길로비치(Thomas Gilovich)의 연구에서 실험 참가자들은 자신이 눈에 띄는 티셔츠를 입었을 때 주변 사람의 절반 정도가 알아챌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23%만이 인지했다고 합니다.(출처: Cornell University).
제가 직장에서 비슷한 사례를 본 경험이 있는데, 타 팀의 한 중간 관리자가 임원 회의 도중 치명적인 보고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 이후 퇴근 후에도, 침대에 누워서도 그 순간이 끊임없이 생각이 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동료들이 뒤에서 "기본도 못 하는 선배"라고 비웃을 것 같고, 앞으로의 인사고과에 오점이 남을 것 같아 두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됐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던 동료들에게 나중에 물어보니 그 보고 오류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각자 자기 발표 준비, 자기 업무에 바빴기에 다른 사람의 실수를 체크하고 기억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사실 본인이 밤잠을 설치며 괴로워하는 그 장면을 타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이미 넘겨버린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도한 자책이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붙이고, 쓸데없이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 가지 예시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나'를 중심에 놓은 착각이라는 점입니다. 내 감정이 다 보인다는 착각, 내 지식을 당연히 다른 사람도 알 꺼라는 착각, 내 실수가 모두의 기억에 남는다는 착각. 이 모든 오류는 결국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며, 내가 지금 어떤 착각 안에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소통은 상대를 완벽하게 읽는 능력에서 오는 게 아닙니다. 내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내가 아는 것을 상대가 모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내 실수를 세상이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이 세 가지 태도가 쌓일 때 관계는 조금씩 더 단단해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