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처음엔 성실하게 저축하면 언젠가 집 한 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적금을 넣고, 예금 이자를 꼬박꼬박 확인하며 원금이 절대 줄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변 아파트 시세를 보고 그 믿음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제가 몇 년간 모은 금액이 주변 아파트값이 단 1~2년 사이에 오른 폭보다도 월등히 작았고, 자꾸 오르는 아파트가격은 제가 월급을 모아서 살 수 있는 금액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 상실감이 계기가 되어 읽게 된 책이 브라운스톤의 "부의 인문학"입니다.
서울 집값, 정말 오를 수밖에 없는가
일반적으로 "서울이 좋다는 건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다 아는 얘기'가 왜 반복해서 이야기되고 있는지를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저와 친하게 지내는 팀장이 어느 날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경기도 외곽에 살면서 서울 을지로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분이었는데, 처음에는 공기도 좋고 집도 넓어서 삶의 질이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왕복 2~3시간을 길에 쏟아버리는 것이 너무 아깝고, 체력적으로도 한계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서울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집 값은 만족했을지 몰라도 시간과 에너지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잃고 있었던 겁니다.
책에서는 이 문제를 집적 효과(Agglomeration Eff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집적 효과란 기업, 인재, 인프라가 특정 도시에 밀집될수록 생산성과 부가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도시가 커질수록 분업이 고도화되고 부가 집중된다고 분석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정부가 지방 균형 발전에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이 집적 효과를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논지입니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 통계를 보면 2015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지방 광역시 대비 월등히 높은 상승률을 기록해 왔습니다(출처: 한국부동산원). 저도 이 수치를 직접 확인하고 나서 팀장에게 "지금 너무 힘들더라도 서울 쪽으로 이동하는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입니다.
다만 여기서 하나 짚고 싶은 게 있습니다. 서울 상급지가 자산 보전에 유리하다는 건 부동산을 잘 모르는 사람도 직감적으로 아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40대 가장에게는 높은 매매가와 대출 규제라는 현실적인 벽이 있다는 점입니다. 무리하게 상급지로 이동했다가 하우스 푸어, 즉 집은 있지만 생활비나 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현금흐름과 활용 가능한 레버리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분업 효율과 가족 유대감, 어디서 선을 그을 것인가
평일에 고된 업무로 주말마저 녹초가 된 몸으로 거실 전등을 교체하는 등, 수많은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 수학 문제를 직접 붙잡고 가르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평일에 회사에서 에너지를 다 쏟고 왔는데 주말이 평일보다 더 바쁜 날이 많았고,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어느새 2~3시간이 훌쩍 지나 있고, 이미 잘 시간이 다 되어가는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부의 인문학에서는 이 문제를 비교우위 원리라고 하여 각자가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거래를 통해 해결할 때 전체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경제학 원리입니다. 40대 가장이라면 업무 성과를 높이거나 투자 공부에 시간을 쓰는 것이 가계 자산을 불리는 데 직접적으로 기여하고, 가사나 사교육은 전문가에게 위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제가 어중간하게 수학을 봐주는 것보다 전문 강사에게 맡기는 쪽이 아이의 학습 효율도 높고 저의 에너지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들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이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전등을 함께 갈아 끼우는 행위는 단순한 노동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아버지와 자녀 사이의 유대감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비용 효율성으로만 환산하면 가장이 가족 안에서 점점 외곽으로 밀려날 수 있고, 이는 훗날 은퇴 이후 정서적 고립이라는 더 큰 문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효율도 중요하고,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만들기 어려운 유대감도 중요합니다. 어느 정도의 절충선이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투자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
제가 아는 어느 팀장은 매달 월급의 절반을 꼬박꼬박 적금에 넣었습니다. 10년 동안 그렇게 모은 돈이 2억 원입니다. 그는 "내 눈앞에 찍힌 숫자가 줄어들지 않으니 나는 안전하다"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와 친한 어떤 형은 주변에 부동산으로 자산을 모으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본인도 해야 하는데 지금 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를 계속 고민만 하다 조바심에 더 참지 못하고 전세금을 빼고 대출까지 최대한 받아 7억 원짜리 아파트를 샀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한 팀장은 10년 전 처음 돈을 모으려고 했을 때에는 그 돈으로 경기도의 30평대 아파트를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아파트는 6억이 되었습니다. 팀장의 예금 2억은 그대로 2억이지만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능력은 3할 정도로 줄어든 셈입니다. 하이에크는 이것을 두고 팀장은 아무것도 안 했지만, 정부가 자산의 60% 이상을 강탈한 것과 같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두 번째에 이야기한 형은 아파트를 사고 금리가 갑자기 오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한 달에 내야 할 이자만 300만 원이 넘었습니다. 덩달아 아이 학원비도 줄여야 하고, 부모님 용돈도 못 드리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어렵게 산 그 집값이 1억 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이에크의 말대로 화폐 가치는 언제가 떨어지지만 그전에 형의 가계는 감당하기 힘든 대출 이자와 자산의 가치하락으로 먼저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현금이 하나도 없으니, 급한 병원비가 필요한 상황이 돼도 집을 팔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위 두 사례를 보며 느낀 것은 성실하게 일만 해서는 물가가 오르는 속도를 절대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내 자산의 일부는 반드시 값이 오를 실물 자산에 투자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투자를 한 후 버티는 힘도 중요합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당장 쓸 현금까지 모두 투자를 해버린다면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그대로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부의 인문학"은 돈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거인들의 통찰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훌륭한 책입니다. 다만 그 지도가 아무리 정확해도, 그 지도를 들고 걷는 사람의 체력과 짐의 무게는 각자 다릅니다. 책의 논리를 인정하되, 나이와 부양가족, 심리적 지지선이라는 나만의 제약 조건과 충돌할 때는 과감히 타협하는 유연함이 40대 가장에게 진짜 필요한 투자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자극을 받는 것도 좋지만, 가장 먼저 할 일은 내 재무 상태를 숫자로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