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봉 8천만 원 이상을 받으면서도 저축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어느 날,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벌이의 규모로 보면 중상층으로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버는 노예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김승호 회장의 사장학개론은 그 불편한 현실을 논리로 정면에서 들이밉니다. 사장이 아니어도, 읽고 나면 자기 삶의 경영 상태를 냉정하게 들여다보게 되는 책입니다.
명함을 내려놓는 순간, 남는 것은 무엇인가
40대 중간관리자라면 대부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보통 거래처 담당자가 먼저 연락해 오고, 협력업체 직원이 깍듯하게 대해줍니다. 저도 그런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사장학개론을 읽으면서 그 관계의 실체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 태도가 저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제가 들고 있는 명함을 향한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장학개론에서는 유사 사례로 '장사와 사업의 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내가 직접 뛰어서 돈을 버는 구조는 장사이고, 사람과 시스템이 나 없이도 돌아가는 구조가 사업이라는 논리입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은 바로 나라는 사람을 브랜드 한 자본구축이라는 개념입니다. 내 몸과 시간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 회사나, 장사는 비슷한 노동수입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단순히 명함이 주는 영향력이 아니라, 회사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독립적으로 통할 수 있는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내 것으로 만드는 사업의 개념에 대해서 간절한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40이 지난 지금 나만의 자본구축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퇴사 후 급격한 무력감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큰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내 수입은 내 노동력에만 묶여 있는가, 아니면 내가 없어도 들어오는 구조가 있는가, 두 번째로 회사 안에서 쌓은 전문성이 밖에서도 독립적으로 통하는가, 세 번째로 지금의 인간관계가 직함 덕분인지, 나 자신 덕분인지 구분하고 있는가.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권위가 내 능력이 아닌 명함의 능력이라고 느껴진다면 더 늦기 전에 나의 가치를 더 향상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봉 8천에 저축이 없다는 현실 점검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40대 가구의 평균 부채는 약 1억 1천만 원에 달하며, 이 중 주택 관련 대출이 절반 이상을 차지합니다(출처: 통계청). 주거비, 사교육비, 부모님 부양까지 지출이 극에 달하는 이 시기를 흔히 '샌드위치 세대'라고 부릅니다.
제가 직접 월 지출을 항목별로 정리해 봤을 때, 생활비와 교육비, 대출 원리금을 합산하면 실수령액의 70% 이상이 고정 지출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연봉 숫자만 보면 그럴싸하지만, 실제 여유 현금흐름(Free Cash Flow)은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 숫자가 작을수록, 건강 문제나 실직 같은 불시의 사건에 취약해집니다.
김승호 회장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몸으로 버는 돈은 한계가 있지만, 돈이 돈을 버는 구조, 즉 수익 자산(Income-Generating Asset)을 만들면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익 자산이란 내가 직접 일하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현금을 만들어주는 자산을 말합니다. 저도 책을 보고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 몇 달 전부터 월급의 일부를 떼어 책에서 조언해 준 방향으로 조금씩 시도해 보았습니다. 결과에 대한 부분은 아직 모르겠으나, 저 역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고 더 늦기 전에 시작해 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솔직하게 말하고 싶은 건, 책의 조언이 때로는 40대 가장에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투자하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만, 이미 빠듯한 살림에서 투자 자금을 별도로 마련하는 일은 상당한 의지와 설계가 필요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생활에 실질적인 타격이 없는 범위 안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무리한 투자 금액 설정은 오히려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립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50대 이후 은퇴자의 약 62%가 은퇴 후 예상보다 빠른 자산 소진을 경험한다고 보고됩니다(출처: 한국금융연구원). 40대가 된 지금 마저 시작하지 않으면,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경영자의 태도를 가져간다는 것의 의미
사장학개론은 리더십의 품격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룹니다. 조직의 성장이 멈추는 가장 큰 이유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사장 자신의 나태함과 그릇의 한계라는 진단은, 가정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논리입니다.
제가 너무 싫어하는 제 모습 중 하나가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그대로 집까지 끌고 들어와서, 아무 이유 없이 가족들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는 것입니다. 다음날 출근하면 어김없이 후회했고, 그러면서도 반복했습니다. 경제적 지원은 하고 있지만, 정작 그런 행동으로 가족들의 마음을 밀어내고 있던 셈이었습니다.
책의 관점에서 보면 이건 '정서적 리더십(Emotional Leadership)'의 실패라고 이야기합니다. 정서적 리더십이란 구성원의 감정 상태를 읽고, 조직의 심리적 안전감을 유지하면서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훌륭한 경영자가 직원을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듯, 가장도 가족 구성원을 그렇게 대해야 한다는 논리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비즈니스 조직처럼 효율과 비전으로만 운영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그릇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가족은 무조건적인 수용과 휴식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 그런 솔직함이 오히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저는 지금, 가족과 건설적인 대화를 늘리되 완벽한 경영자가 되려는 부담은 내려놓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장학개론은 자본가의 시각으로 쓰인 책이지만, 그 안에는 40대 직장인이 자기 삶을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들어 있습니다. 명함을 내려놓은 뒤에도 나만의 것을 지금부터 만들어가야 한다는 메시지는, 직함이나 업종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지금 당장 거창한 변화를 시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월급에서 적은 금액 하나를 수익 자산으로 돌리고, 가족 앞에서 스트레스를 덜 표출하고, 내 이름으로 쌓이는 전문성이 무엇인지를 매달 한 번만 점검해도 충분한 시작이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