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초기, 저는 작은 방 하나에서 아내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대로 10년이 지나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 불안함이 저를 무리한 부동산 매입으로 이끌었고, 한동안은 숨이 막힐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경험이 있었기에 "부자의 그릇"이라는 책이 더 날카롭게 읽혔습니다.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곧 그 사람의 그릇 크기를 보여준다는 이 책의 핵심은, 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
조바심이 그릇보다 앞설 때 생기는 일
저희 회사 동료 이야기입니다. 주변에서 부동산으로 수억 원을 벌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 동료는 눈에 띄게 불안해했습니다. 몇 달 후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싸게 산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일단 샀으니 기분은 좋아." 가진 돈을 전부 긁어모으고 무리한 레버리지(leverage)를 일으켜 근처 아파트를 매수한 뒤였습니다. 레버리지를 사용할 때에는 매월 들어오는 월급에서 고정 비용과 기타 비용이 얼마나 사용되는지 최대한 철저히 계획해야 합니다. 수익이 날 때는 효과적이지만, 원리금 상환 부담이 고정비로 고착된다는 점에서 현금 흐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그릇에서는 "사람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돈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잃게 된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아예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저는 이 조언이 한국의 자산 인플레이션 현실 앞에서 어느 정도는 적용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폐 가치 하락 속도가 개인의 그릇이 커지는 속도보다 빠른 시장에서,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라"는 말은 자칫 영원한 무주택자로 남게 만드는 조언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결혼 초 무리한 매입 이후 몇 년간 이자 부담과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아내와 함께 정말 힘들게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뎌내고 나니, 지금은 같은 나이 때 친구들보다 훨씬 나은 자산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릇이 완전히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도, 때로는 부채를 갚아나가는 과정 자체가 억지로 그릇을 키우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조바심 때문에 입은 손실과, 조바심 덕분에 얻은 기회. 이 둘 사이에서 중요한 건 결국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상한선을 얼마나 냉정하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신용이고, 신용은 내 이력서다
저보다 일곱 살 많은 팀장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50대에 임박하면 조직에서 슬슬 퇴직 압박이 시작됩니다. 그 팀장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은퇴 후를 대비해 노후 자금의 절반을 털어 유명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열었습니다. "남들도 많이 하니까 중간은 가겠지"라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 파워만 믿고 정작 운영 노하우는 갖추지 못한 채 시작한 사업은 2년도 채 안 돼 폐업 위기에 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돈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회사원으로서의 역량과 사업가로서의 역량은 완전히 다른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팀장님은 수십 년간 조직의 톱니바퀴로 살아오며 해야 할 일을 해온 분이었지, 리스크를 직접 감수하며 의사결정을 해왔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걸 단순히 개인의 준비 부족으로만 돌리는 건 저는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자영업자 수는 약 550만 명에 달하며, 이미 포화 상태에 가깝습니다(출처: 통계청).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 플랫폼 수수료 구조, 임대료 상승까지 겹치는 구조에서 개인이 아무리 그릇을 키워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존재합니다. 이는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고착화되어 있는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그렇기에 시작 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로 내가 진입하려는 시장의 구조를 먼저 분석했는가, 두 번째로 운영 자금 이외에 6개월치 비상 자금을 확보했는가, 세 번째로 브랜드가 아닌 내 운영 능력을 먼저 검증했는가. 이 세 가지조차 사전에 점검하지 않은 채 뛰어든 창업은, 아무리 신용이 좋아도 무너지기 쉽다고 생각합니다.
실패가 두려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진짜 리스크다
저희 회사 임원 중 한 분은 섣불리 돈을 잃을까 봐 모든 자산을 은행 예금에만 묶어두었습니다. "안전한 게 최고"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분의 자산은 숫자상으로는 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같은 금액으로 실제로 살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의 양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2024년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로 집계되었으며, 누적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예금 이자만으로는 자산 가치를 지키기 어려운 구조입니다(출처: 한국은행).
책에서 노인이 말하는 진짜 리스크의 정의가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합니다. 부자가 두려워하는 건 돈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돈이 늘지 않는 상황 자체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 포기한 수익이, 실패로 잃을 수 있는 금액보다 클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저 역시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멈췄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작은 실패들을 반복하면서 판단력이 확실히 좋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40대에게 필요한 건 실패해도 괜찮은 도전이 아니라, 철저히 리스크를 통제한 작은 시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도들이 쌓여 그릇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이고, 그 그릇의 크기만큼 돈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단순합니다. 지금 당장 수중에 돈이 없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갑자기 큰돈이 생겼다고 서두를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지금 10억 원이 생긴다면 그것을 제대로 운용할 안목과 인내심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먼저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그 답이 아직 "아니요"라면, 지금 해야 할 일은 큰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집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