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이 책을 오랫동안 피해왔습니다. 제목부터 마케팅 냄새가 진동했고, '힐링서'라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이 책을 펼쳤을 때, 제가 마주한 건 따뜻한 위로가 아니라 냉정한 각성이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Adlerian Psychology)은 개인의 책임을 철저히 강조하는 철학입니다. 여기서 아들러 심리학이란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목적이 있으며, 과거의 트라우마가 아닌 현재의 선택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보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제 인생의 불만을 부모 탓, 사회 탓으로 돌리던 저에게 이 책은 "다 네 탓이다"라고 정면으로 외쳤습니다.
열등감이라는 인간의 숙명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마주한 개념이 바로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이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곧 열등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열등감이란 단순히 남보다 뒤처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더 나아지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열등감은 정말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마흔 중반까지 늘 누군가와 저를 비교하며 살았습니다. 친구의 승진 소식에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쓴맛을 삼켰고, 후배의 성공담을 들으며 겉으로는 웃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씁쓸해하곤 했습니다. 이런 반복적인 행동 패턴을 관찰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건 단순한 부러움이 아니라, 제 존재 가치를 타인과의 비교에서 찾으려는 열등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였던 겁니다.
아들러는 이 열등감이 우월 콤플렉스(Superiority Complex)로 이어진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월 콤플렉스란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과도하게 자신을 과시하거나 남을 깎아내리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제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잘하는 분야에서는 은근슬쩍 자랑을 늘어놓고, 제가 못하는 영역에서는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라며 합리화했습니다. 이런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는 제 열등감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비겁한 도피였던 겁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매슬로(Maslow)는 이를 '존경의 욕구'라고 불렀고, 니체(Nietzsche)는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개념으로 약자가 강자에게 품는 원한을 설명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번뇌'라고 합니다. 결국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상가들이 같은 인간의 본성을 다른 언어로 표현해 왔던 겁니다.
인정욕구를 외면하지 말고 직면하라
아들러는 "인정욕구를 부정하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책과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제 경험상 인정욕구를 억누르는 건 또 다른 억압일 뿐이었습니다.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에서는 억압(Repression)이 모든 신경증의 근원이라고 보는데, 여기서 억압이란 받아들이기 힘든 욕구나 감정을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는 방어기제를 말합니다.
저는 오히려 제 인정욕구를 똑바로 쳐다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지금 친구들보다 더 잘 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거야", "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이렇게 애쓰는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졌습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제 내면의 우물이 얼마나 더럽고 비겁한지를 들여다보는 일은 자존심을 완전히 내려놓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솔직해지자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제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들, 예를 들어 질투하는 사람의 말에 단톡방에서 댓글을 안 달거나, 그 사람이 웃긴 얘기를 해도 덜 웃어주는 패턴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관찰을 통해 "아, 내가 저 사람한테 열등감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인정하게 됐습니다.
아들러가 말하는 '공동체 감각(Gemeinschaftsgefühl)'에 도달하려면 이 과정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공동체 감각이란 나와 타인, 더 나아가 우주 전체가 연결되어 있다는 소속감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건 결과이지 방법이 아닙니다. 공동체 감각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건 또 다른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타자공헌으로 가는 진짜 길
아들러 심리학의 최종 목표는 타자 공헌(Social Interest)입니다. 여기서 타자 공헌이란 공동체에 기여하며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뜻하며, 이것이 곧 인생의 의미라고 아들러는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책에는 '어떻게(How)' 그 경지에 도달하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그냥 "남을 믿고, 자신을 수용하고, 공동체에 공헌하라"는 결론만 던져줄 뿐입니다.
솔직히 그게 마음대로 되면 누가 고민하겠습니까. 저는 종교와 철학, 심리학의 고전들을 찾아보며 힌트를 얻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아(Ego)를 내려놓는 훈련'이었습니다. 여기서 자아란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우월하거나 열등하다고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명상이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가만히 앉아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열등감과 우월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게 보입니다. 중요한 건 그걸 억누르거나 부정하지 않고, "아, 지금 내가 질투를 느끼고 있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겁니다. 이런 알아차림(Mindfulness)이 쌓이면서, 제 마음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친절함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짜 친절입니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매너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가짜 친절이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이 편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야구선수 오타니가 길거리 쓰레기를 줍는 것처럼, 계산 없는 작은 배려 말입니다. 이 작은 친절을 제 안에서 발견했을 때, 비로소 아들러가 말한 공동체 감각의 씨앗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에 대한 공헌 활동이 개인의 심리적 안녕감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공헌을 하면 행복해진다'가 아니라, '진짜 공헌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비로소 의미를 느낀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열등감과 교만함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완벽한 깨달음 같은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깨달았다고 인정받던 구루(Guru)들조차 롤스로이스를 수십 대 소유하며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인가 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사실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의 차이입니다.
마흔을 넘긴 지금, 저는 더 이상 특별해지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저 제 평범한 하루하루가 누군가에게, 혹은 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의미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들러의 말처럼 인생은 도착해야 할 목적지가 있는 선이 아니라, 찰나의 순간들이 모인 점들의 연속입니다. 이 평범한 점들이 모여 제 인생이라는 고유한 무늬를 만들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죽음 앞에서 가져갈 수 있는 건, 남들보다 우월했던 기억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친절, 그리고 그 마음이 통했던 순간들입니다. 그 순간들을 많이 가진 사람이 "나는 참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미움받을 용기는 결국 나답게 살 용기이며,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진짜 연결과 의미가 인생의 보상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2osEjDLX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