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저는 제가 꽤 공정한 평가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15년 넘게 중간관리자로 일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제 판단만큼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대니얼 카너먼의 "노이즈"를 읽고 나서, 그 확신 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착각이었는지 인정하게 됐습니다. 판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잡음이 있고, 그 잡음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판단 잡음의 실체
이 책에서 말하는 '노이즈(Noise)', 즉 판단 잡음이란 같은 문제를 놓고 사람마다, 또는 같은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 보니 결론이 일정하지 않고, 들쑥날쑥하기 때문에 그 결과를 신뢰하기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 보니 저도 판단 잡음이라는 것을 경험했던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같은 부하 직원이 제출한 동일한 보고서를 월요일 아침에 열어볼 때와 금요일 오후에 열어볼 때, 제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고된 출근길 정체로 지친 상태에서는 장점보다 허점이 크게 눈에 들어오고, 심리적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는 같은 허점을 너그럽게 넘겼던 것을 느꼈습니다. 스스로는 객관적으로 판단을 했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제 피로도와 기분이 평가 점수에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직장인이라면 다들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윗 선임에게 보고서나 결제를 받을 때 선임의 기분이 어떠한지를 고려하여 지금은 가면 안 되겠다, 아니면 지금 빨리 가서 결제받아야겠다고 판단하지 않으십니까? 그게 나름 판단 잡음을 고려한 선택이었음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판단 잡음이란 생소한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많이 적용하고 있는 개념임을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판단 잡음을 유발하는 요인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첫 번째로 신체적 피로와 스트레스 누적이라 생각하고, 두 번째로 기분과 감정 상태도 충분히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날씨와 시간대 등 환경적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먼저 판단한 사람의 의견에 동조되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 직장인들은 회의 때 나온 의견과 본인의 생각이 다르다 해도 그것을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가 신화와 직관의 함정
저는 자산 증식을 고민하던 때 부동산을 많이 알아보았었습니다, 여러 부동산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했는데, 동일한 자산 규모와 대출 여력을 제시했는데, 돌아오는 조언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한 중개법인 대표님은 상급지 재건축 매물을 선점하라고 했고, 또 다른 대표님은 경기권 신축 대단지로 이동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이 차이를 '가치관의 차이'로 해석하며 정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노이즈에서는 이런 부분을 시장의 복잡성 때문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 내부의 심각한 시스템 잡음(System Noise)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시스템 잡음이란 동일한 조건에 대해 판단자들 사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개인 간 차이를 의미합니다. 객관적 분석에 기반한 조언이었다면, 같은 조건을 입력했을 때 결론이 비슷해야 정상이지만, 대표들의 개인의 투자 성향, 주로 다루는 매물 종류, 그날 꼭 성사시키고 싶은 계약 여부까지 조언의 방향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도 있었습니다, 친구들하고 오랜만에 만나서 근처 맛집을 찾아보겠다고 돌아다녀본 적이 있었습니다. 골목을 지나는데 한 식당이 눈에 띄었습니다. 간판 글씨체도, 은은한 조명도 마음에 들었고 안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확 풍겼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아, 여기다. 여기가 진짜 맛집이라는 확신이 든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카너먼이 말한 내재적 신호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느낌이 너무 강렬하다 보니 우리는 이 느낌을 진짜 맛집이라는 증거로 착각한다는 겁니다. 사실 그냥 분위기에 취한 감정일 뿐인데 말입니다. 그날 막상 먹어보니 첫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참 맛이 없었다는 기억만 남았습니다.
판단 잡음을 줄이는 실전 접근법
인사팀 동기가 겪은 사례가 꽤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신입사원 면접에서 화려한 스펙은 없지만,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지원자에게 주관적으로 최고점을 줬다고 합니다. 동기는 그것을 '잠재력을 알아본 통찰'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저는 그게 자신의 생각을 왜곡하는 인지 편향과 자신과 비슷한 배경이나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더 호의적인 평가를 내리는 유사성 편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면접은 카너먼의 표현을 빌리자면 '심리적 편향의 함정'입니다. 외모, 첫인상, 면접관과의 공통점 같은 업무와 상관없는 요소가 평가에 개입하는 것은 수십 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임원은 자신의 면접 판단에 높은 신뢰를 부여합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판단 잡음을 줄이기 위해서는 평가자들이 서로의 판단을 모른 채 독립적으로 결론을 내린 뒤 합산하면 잡음을 줄일 수 있고, 본인의 직감 대신 사전에 설정된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일관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합니다. 판단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잡음이 있고, 그 잡음의 크기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항상 크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공정하다고 믿는 관리자, 경험이 많다고 확신에 찬 전문가일수록 이 사실을 직시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제가 15년 넘게 공정하다고 믿어온 제 판단에도, 한 순간의 피로도와 기분이 녹아 있을 가능성을 저는 더 이상 부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자신의 판단에 잡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노이즈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