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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멸종 실천법 (여행, AI, 디지털시대)

by yoo12191 2026. 4. 22.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유튜브를 먼저 켜는 것이 당연해진 게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도 어느 순간부터 맛집 리스트를 검색하고 인생샷 스팟을 찾아 알아놓는 것이 여행 준비의 전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을 때였습니다. 기술이 경험을 얼마나,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바꿔놓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된 책 한 권 덕분에 이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계획된 여행이 빼앗아간 것들

2년 전 가족들과 남해로 10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숙소와 먹을 곳 몇 곳을 빼고 나머지는 전혀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무모한 선택이었지만, 도착 이후 현지 분들께 직접 물어물어 돌아다닌 그 시간이 지금도 가장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간판도 없는 허름한 찌개집에서 먹은 한 끼, 갑작스러운 폭우에 슬리퍼가 떠내려가던 황당함, 우비를 입고 비를 맞으며 걸었던 골목길. 그 어떤 것도 미리 검색해서 나온 결과나 예상할 수 있었던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짜인 여행 계획이 가족 모두를 더 만족스럽게 해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동선이 촘촘하게 짜인 여행일수록 가족과 나누는 대화는 오히려 줄어들고, "다음은 어디야?" "몇 시에 예약했어?"가 대화의 전부가 되었고, 다음 스케줄 맞춘다고 이동하고, 또 도착해서는 일정 소화하는 반복된 상황 속에서 피곤함에 찌들어 쓰러져 잠드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준비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최저가 숙소 예약이나 밀키트 준비가 일정을 짜야하는 가장의 정신적인 노동을 덜어주는 것도 사실입니다. 준비가 잘 되어 있으면 그 여유가 대화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효율 중심의 여행이 정착되면서 아날로그 감성이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우연찮게 해결하게 되는 일들 등등 우리의 삶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분명히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AI가 대체하는 것, 그리고 남는 것

15년 가까이 쌓아온 직무 경험이 AI와 데이터 분석 툴 앞에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입니다. 보고서나 제안서를 쓸 때 제 직관보다 툴이 뽑아낸 결과를 맞추는 편이 시간도 적게 들고 보기에도 그럴싸합니다. 사실 AI의 등장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빨리 현장에서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삶에 밀접하게 사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인 생성형 AI는 단순한 자동화와 달리, 맥락을 이해하고 결과물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기존 업무 도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 사이에서도 생성형 AI 도입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4년 디지털 전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AI 활용률이 3년 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그렇다면 40대 중간 관리자에게 이것은 위기인지, 기회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며칠씩 걸리던 데이터 정리가 클릭 몇 번으로 끝날 때의 해방감은 분명히 있습니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작업에서 벗어나 더 고차원적인 전략 판단이나 팀원 케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인 장점입니다.

다만 허무감도 함께 온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와 직관이 효율성 앞에서 쓸모없는 것으로 밀려날 때,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직업관이라는 개념이 흔들립니다.  이 개념이 약해질 때 사람은 번아웃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 도입이 빠를수록 이 심리적 충격을 해소할 사회적 준비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디지털 시대 40대의 균형 찾기

지인들 SNS를 보면 해외 골프 라운딩, 오마카세, 유럽 여행 사진이 넘쳐납니다. 솔직히 저도 그 사진들을 보다 보면 묘한 박탈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남들은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40대 가장의 일상은 여행 다닐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연구에 따르면 SNS 이용 시간이 길수록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는 경향이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다만 저는 이것을 단순히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바쁜 직장생활로 오프라인 모임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40대에게 SNS는 끊기기 쉬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되기도 합니다. 동창의 근황을 확인하고, 자신의 취미를 공유하는 행위는 고립을 방지하는 실질적인 도구이기도 합니다. 연결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경험을 열어준 측면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술이 주는 편리함을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내가 경험했던 많은 일들을 별거 아닌 것처럼 비추고 있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되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 날들만 쌓이게 됩니다. 제 경험상 가장 선명하게 남은 순간들은 상당 부분 약간의 불편함과 예상치 못했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술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비효율'을 선택하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치열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40대에게 그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균형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검색하지 않고 길을 잃어보는 것, 그것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을 만드는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W8_53HmV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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